임권택 감독이 1999년 조상현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하였다.
동편제 김세종 바디 조상현의 춘향가.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니는 것 네가지
1. 봉서 : 어사 임명장
2. 사목 : 암행어사의 책무를 기록해 놓은 책자
3. 유척 : 검시에 사용하는 놋쇠자, 구초부터 중요한 감찰서목이 있던 각 고을의 도량형과 형구의 규격 감사를 위해 지급하는 것
4. 마패 : 역마와 역졸을 부리는데 쓰는 신분증명용 패
1. 판소리의 뜻(Etymology)
판소리란, 부채를 든 한 사람의 창자(소리꾼)가 한 사람의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추어, 소리, 아니리, 발림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인 음악으로, 북 치는 이는 이 소리에 맞추어 ‘얼시구’하고 외쳐서 흥을 돋구기도 한다.
이 고수의 흥을 돋구는 것을 ‘추임새’라 한다.
소리는 ‘창’이라는 말로 등치 시킬 수 있고, 아니리는 말, 발림은 너름새로 사용되기도 한다.
판소리가 지금은 흔히 극장놀음이나 방안놀음으로 벌어지지만, 옛날에는 판놀음으로 벌어졌다.판놀음은 넓은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판을 벌린다’하여 놀이의 구색을 갖추고, ‘판을 짠다’하여 놀이 순서를 제대로 짜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연행하는 놀음을 가리키는 바, 판놀음으로 타는 줄타기는 ‘판줄’이라 하고, 판놀음으로 치는 농악을 ‘판굿’이라 한다. 그렇듯이 판놀음으로 벌이는 소리를 판소리라 하는 것으로 ‘판’이란 말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러면, 소리는 무엇이며, ‘소리하기’란 무엇일까요? ‘소리 한자리 해라’, ‘소리를 잘한다’와 같은 예스러운 표현에서, 또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김매기 소리, 상여소리와 같은 말에서 우리는 그것이 ‘노래’ 또는 ‘노래하기’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판소리라는 말은 이 나라의 토박이말이다. 옛날에는 이를 잡가, 극가, 창가, 본사가 따위의 한자말로 쓰기도 했으나, 요즈음은 그런 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판소리는 우리 전통예술의 특징인 자유분방함과 임의성(任意性), 즉흥성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예를 들면 송흥록代까지는 정확한 대본없이 스승으로부터 익힌 사설에다 구전가요나 재담등을 즉흥적으로 삽입하여 구연(口演)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엄청난 사설의 양으로 보아 사설이나 창법의 정확한 전승이 어려웠다기 보다도 청중의 감흥을 중요시한 방법으로 소리꾼의 가변성과 즉흥적 윤색을 용인하는 것으로, 이것이 판소리의 특성이자 묘미라 할 수 있다.
2. 판소리의 기원과 발전
판소리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사설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30년인 1754년 호가 ‘만화’인 유진한이 쓴 만화집(晩華集)에 한시로 적은 만화본 ‘춘향가’의 사설이 실려있다.
영,정조 때에, 판소리 12마당이 불리워졌지만 그 사설이나 음악이 짧고 소박하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순조 무렵에는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박유전 같은 명창들이 나서 갖가지 장단과 조를 짜서 판소리의 음악 수준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가왕으로 불린 송흥록은 진양장단과 우조, 계면조를 발전시켜 판소리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끌어 올렸다고 전해진다.
광대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왔던 판소리 사설 중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6마당이 신재효(申在孝 : 1812-1884)에 의해서 문헌으로 정리되었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는데, 전라북도에서 시작되어, 전라남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의 운봉, 구례, 순창과 같은 곳에서는 ‘동편제’라 하여 많이 불렸는데, 씩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며, 송흥록을 시조로 삼는다.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과 같은 곳에서는 서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정교하고 감칠맛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편제 가운데 박유전제는 그 시조로 삼고 있는 박유전의 호를 따서 ‘강산제’라고도 한다.
중고제는 책을 읽는 듯한 담담한 소리제로, 소리의 높-낮이가 분명하다.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불렸는데, 염계달, 김성옥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판소리가 서너가지 제로 나뉘어 발전된 것은 그 당시 명창들의 활동이 독보적이면서도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철종 무렵에는 박만순, 송우룡, 김세종 같은 명창들이 판소리를 발전시켰고,고종 무렵에는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등의 명창이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그 뒤를 이어 임방울, 이화중선, 박녹주 같은 명창이 나왔으며, 그 후 박동진, 김소희 명창이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특히 외국에 이 시기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명창으로는 조상현, 안숙선 명창들이 있다.
3. 발성법
세계의 모든 미족은 저마다 고유한 창법을 가지고 있다. 서양 음악에서 가곡이나 오페라의 발성법과, 우리 전통음악에서 가곡이나 판소리나 범패의 발성법은 서로 사뭇 다르다. 서양 음악의 가곡이나 오페라 발성법에서는, 이른바 벨칸토 창법이라하여, 목을 둥글게 열고, 머리와 가슴이 울리게 하고, 배에서 숨을 롤려 내는 맑을 소리를 으뜸으로 친다면, 판소리의 발성법은, 내는 소리가 통성이라 하여, 배에서 숨을 올려 지르는 것임에서는 서양 발성법과 같으나, 목을 다스려서 약간 거칠고 텁텁한 소리를 질러 내며, 코의 울림보다는 입과 가슴의 울림에 더 힘쓰는 점이 다르다. 음질은 가객에 따라서 달라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껄껄한 수리성, 단단한 철성, 밝고 맑은 천구성을 좋게 치나, 되바라진 양성, 발발 떠는 발발성, 콧소리가 나는 비성 따위는 좋지 않은 것으로 친다. 특히 귀신 울음소리같이 사람으로 흉내낼수 없는 신비한 소리를 귀곡성이라 불렀는데, 동편제 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 명창이 옥중가의 귀곡성을 잘 불렀다고 한다.
4. 고수의 역할
예부터 ‘일고수, 이명창’ 이니 ‘숫고수, 암명창’이니 하여 고수의 구실을 무겁게 여겼다. 고수는 가객의 소리에 맞춰 북을 쳐서 소리의 장단을 잡아 준다. 또 소리꾼이 박을 던졌다가 잡았다가 할 때에 그의 북 장단에 나타나는 박으로 가객으로 하여금 소리의 박을 가늠하도록 한다.
소리꾼이 박을 던지는 것은 박자에 거리낌없이 자유로이 소리하다 라는 뜻이고, 박을 잡는다 라는 말은 박을 던졌다가, 즉 자유로이 소리하다가 다시 원래 박자에 맞춰 부르는 것을 말한다.
또한 고수는 추임새를 통하여 가객의 맞수의 구실을 하며, 소리의 틈을 메워 주고, 소리를 이끌어 간다.
5. 판소리의 장단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은 원래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가 사용되었으나 진양, 중몰이, 중중몰이, 잦은몰이, 휘몰이, 엇몰이, 엇중몰이 등으로 확대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이 장단들은 박자, 빠르기, 북치는 법이 서로 다른데, 판소리 사설에 나타나는 한가하거나 긴박한 상황에 따라 느린 것이나 빠른 것을 가려 써서 소리를 엮어 나간다.
6. 판소리의 조
원래 판소리에 사용되었던 조는 계면조가 원형이었으나, 가락의 짜임새나 꾸밈새나 모양새에 따라 지어지는 음악적인 특징들이 변화함으로써 우조, 평조, 경드름, 설렁제 등의 종류가 추가 되었다. 이 중에서 계면조, 평조, 우조의 특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계면조
육자배기나 남도 흥타령과 같은 전라도 민요의 가락을 판소리로 짠 것이라 볼 수 있다.슬프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슬픈 장면이나 여자의 거동을 그리는 대목에 흔히 쓰인다. 춘향가에서 춘향과 이 도령이 이별하는 대목, 심청가에서 심청이 죽으러 가는 대목, 흥보가에서 흥보마누라의 가난타령, 수궁가에서 병든 용왕이 탄식하는 대목, 적벽가에서 군사들의 설움타령 등.
우조
가곡, 시조와 같은 노래의 가락을 판소리로 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웅장하고 화평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화평스러운 장면, 장엄한 장면, 남성다운 장면, 유유한 장면에 쓰인다. 춘향가의 사랑가 가운데 느린 진양 부분인 ‘긴 사랑가’와 변학도가 남원으로 내려오는 대목, 적벽가에서 유비가 제갈양을 찾아가는 대목들이 우조로 불린다.
평조
우조와 마찬가지로, 가곡, 시조와 같은 노래의 가락을 판소리로 짠 것으로 보인다. 명랑하고 화창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기쁜 장면, 흥겨운 장면에 흔히 쓰인다. 흥보가의 제비가 날아드는 대목, 수궁가에서 토끼가 꾀를 부려 세상에 나오는 대목들이 평조로 불린다.
7. 단가(短歌)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노래할 사람의 목도 풀어주고 관객들의 관심과 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부르는 3-4분 정도의 짧은 노래. 첫머리에 부르는 노래라는 뜻에서 허두가(虛頭歌 )라고도 한다. 조는 평조와 우조, 장단은 중모리로 된 곡이 많다. 중장망혜, 운담풍경, 강상풍월, 고고천변, 진국명산, 편시춘, 호남가, 만고강산, 장부가, 백발가, 이산저산 등이 있다.
8. 소리꾼의 기본 요건 4가지
신재효는 판소리 소리꾼이 갖추어야할 기본 요건으로 인물, 사설(辭說 : 오늘날의 아니리), 득음(得音), 너름새(오늘날의 발림)를 꼽았다.
9. 더늠
1)‘더늠’이란 ‘더 넣는다, 더 늘어나다’ 는 의미를 가진 말인데, 뛰어난 소리꾼에 의하여 새롭게 짜여져 늘어난 소리 대목, 또는 어느 소리꾼이 특별히 잘 부르는 대목이나 작품, 혹은 어느 유파에 따라 계승되어 오는 특징적인 대목이나 음악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작곡자의 개념이 거의 없는 판소리에 작곡의 개념이 부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옛날 명창들이 특징 있는 가락으로 짜서 장기 삼아 부르던 판소리 대목 예) <춘향가>의 ‘쑥대머리’는 임방울의 더늠이다.
10. 쑥대머리
<춘향가>의 한 대목으로 변학도에게 곤장을 맞고 옥에 갇힌 춘향이의 쑥대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마치 귀신같은 기괴한 몰골을 묘사한 곡으로 임방울 명창이 잘 불렀다고 한다.
11. 눈대목
소리꾼에 의해서가 아니라 판소리 자체만으로 보았을 때, 각각의 판소리 다섯 마당 중, 문학적, 음악적, 극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거나 흥미있는 장면을 그 판소리의 눈대목이라 한다.
12. 판소리 다섯마당 간단 해설과 눈대목
1. 춘향가(春香歌)
<춘향가>의 주인공 이름이 춘향이라서 거기에 노래 歌 자가 붙은 것이다. 그리고 춘향은 말 그대로 봄 향기라는 말인데 이몽룡과 광한루에서 서로를 본 것도 계절상 봄이다. 그리고 <춘향가> 결말쯤에 보면 옥에 갇혀 죽게 될 춘향을 이 도령이 어사출도로 살려냈는데, 그때 춘향 어머니가 "동헌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梨花春風)이 내 딸 살리니"라로 묘사한다. 춘향의 옥중 시련과 죽음의 위협이 겨울을 상징한다면 그 온갖 간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치 추운 대지를 녹여 생명을 움트게 하는 봄이라고 할 수 있다. 춘향은 사랑으로서 의미를 얻을 수 있는데 이성인 이몽룡과 처음 만난 때도 봄이고 다시 만나 사랑이 이루어지게 된 때도 봄인 셈이다. 그러니 <춘향가>가 청춘 남녀의 사랑 노래이니만큼 봄 자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춘향가>는 낭군 이몽룡을 한 사람 만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고 결국에는 그에 보답을 받는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오륜 중에서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덕목을 칭송하고 기리고 있다. 요즘 식으로 남녀간의 사랑 이라는 말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눈대목>
사랑가
고금동서를 통하여 사랑타령처럼 많이 불린 노래가 있을까? 그러나 듣고 또 들어도 식상하지 않는 사랑노래가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이다. 사랑가는 진양 장단의 긴 사랑가와 중중모리 장단의 자진 사랑가로 이루어진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로 시작하는 진양장단의 긴 사랑가는 생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사후의 기약을 이렇게 노래한다.
“너는 죽어 꽃이 되되 벽도홍 삼촌화가 되고 나도 죽어 범나비 되되, 춘삼월 호시절에 니 꽃송이를 내가 덤쑥 안고 너울너울 춤추거든 니가 날인줄 알려무나~”
진양장단에 짐짓 익살스런 창법의 음색으로 나비와 꽃, 인경과 인경 마치 같은 남녀를 각각 상징하는 글자로 사랑을 노래하던 긴 사랑가는 중중모리 장단의 아기자기한 자진 사랑가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로 이어진다.
춘향가 어사출또 대목
춘향가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사출또 대목은 숨이 곧 넘어갈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을 눈물이 날 정도로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칼날을 해학적으로 푸는 어사출또 대목이야말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는 신명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암행어사 출도여! 암행어사 출도하옵신다. 두세번 부르난 소리, 하날이 담쑥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수백명 구경꾼이 독담을 무너지닷이 물결같이 흩어지니~ 각읍 수령은 정신 잃고 이리저리 피신헐제, 하인 거동 장관이라. 수배들은 갓 쓰고 저의 원님 찾고, 봉인은 인궤 잃고 수박텅 안았으며~“로 묘사되는 이 대목은 동헌이 들썩거리는 난장판을 자진모리장단의 현란한 북 가락이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2. 심청가(沈淸歌)
<심청가>는 그 주인공이 심청이기 때문에 '심청가'가 그 제목이다. 沈 자는 '가라앉을, 빠질'이라는 뜻인데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으로 부친 눈을 띄우기 위해서 임당수에 빠진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淸 자는 '맑을, 깨끗할'이라는 뜻이 있는데 심청의 성품을 상징할 수도 있고, 아버지를 위해 빠진 물, 그리고 부친이 어두운 눈을 떠서 맑게(밝게)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된다.<심청가>는 아버지를 위해서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는 효(孝)를 강조하고 있어서, 오륜으로 보면 부자유친(父子有親)에 해당한다.
<눈대목>
범피중류
심청가에는 범피중류, 방아타령, 화초타령, 심황후 사친가, 심봉사 눈뜨는 대목 등 들을만한 대목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이 팔려 선인들을 따라 배를 타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러 가는 대목인 범피중류가 특히 뛰어나 가히 심청가의 노른자위라고 할만하다.
“범피중류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한 창해이며, 탕탕한 물결이로구나~”로 시작하는 이 대목은 느짓한 진양 장단에다 담담한 우조로 시작하여 심청의 절박한 심정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슬픔을 이면에 감춘 이 소리는 오히려 비장감을 더욱 느끼게 하여 극적인 효과를 높여준다.
인당수에서 인제수(人祭需)를 드리는 장면에서부터 높아지기 시작하는 북소리와 함께 분위기는 급변한다. “심청이 거동봐라. 샛별같은 눈을 감고, 초막자락 무릎 쓰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우루루~”까지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가 느려지면서 “만경창파 갈매기 격으로 떴다 물에가 풍!”을 그림으로 그리듯이 부른다.
“풍”소리와 함께 일순간 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이 고요하게 흘러 풍랑이 가라앉은 것을 묘사한 후 “행화는 풍랑을 쫓고 ~”가 진양 장단에 얹혀져 이어진다. 느린 진양 장단에서 점점 빨라지는 장단의 변화와 함께 잘 짜여진 소리는 이 대목을 한층 극적으로 느끼게 한다.
범피중류 대목은 명창 김소희가 가장 즐겨 부르는 대목인데 최근에 이 대목만 들을 수 있는 음반이 워너뮤직 코리아에서 발매되었다. 그 외에 한애순, 성창순, 안숙선의 창도 명연이다.
김소희의 범피중류
김소희의 심청가는 원래 박유전-이날치-김채만-박동실-김소희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서편제이며, 한애순의 심청가와 계보가 같다. 이 바디의 특징은 부침새(리듬의 변화)와 시김새(목소리의 기교)가 다른 유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며, 음악적 짜임이 극히 정교하다. 이 범피중류 대목이야말로 그러한 특징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동백의 범피중류가 우람하고 장엄한 맛을 지닌다면, 이 바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밀한 음악적 구성과 그리고 한 치의 여백도 없이 정교하게 놓은 수틀처럼 화려한 기교들로 꾸며져 있다.
3. 흥보가(興甫歌)
역시 흥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興은 '흥겨울, 흥할"이라는 뜻이고 甫는 '비로소'라는 뜻인데 갖은 고생과 가난을 이기고 비로소 흥했다는 내용을 상기해보면 되겠다. <흥보가>는 아우를 구박하고 미워한 놀보가 개과천선해서 아우 흥보를 다시 받아들이고 자신을 잘못을 뉘우친다는 내용으로, 흥보는 형에게 멸시와 구박을 받았지만 끝까지 놀보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야겠다. 그래서 오륜상으로는 장유유서(長幼有序)에 해당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고 있다.
<눈대목>
제비노정기와 박타령
흥보가에서 유명한 대목은 놀보심술, 돈타령, 중타령, 제비노정기, 박타령 등이다. 제비노정기는 흥보 제비가 은혜 갚을 박씨를 물고 강남에서 흥보 집까지 오는 과정을 노래한 것으로 근대5대 명창중의 한 사람인 김창환이 만든 것이다.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릎쓰고, 거중에 둥둥 높이 더 두루 사면을 살펴보니 서촉은 지척이요, 동해 창망하구나~”로 시작하는 제비노정기는 중중모리몰이 장단의 흥겹고 힘찬 가락이 일품이며 제비가 우는 것을 묘사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자진 휘몰이로 부르는 박타령은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 짝을 톡톡 털어 붓고 나니 도로 수북, 톡톡 털어 붓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쌀과 돈이 도로 하나 가득허고~”를 혀가 안 돌아갈 정도로 빨리 불러야 하는 대목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랩송을 연상시킨다.
4. 수궁가(水宮歌)
<수궁가>의 공간적 배경을 말하자면 육지와 수궁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아무래도 육지보다는 수궁이라는 장소가 더 흥미롭다. <수궁가>의 '눈대목'도 토끼가 수궁에서 죽을 고비를 만나 살아나는 부분인데 그런 저런 점을 생각해보면 <수궁가>라는 제목이 이해가 갈 것이다. '물' 水 자에 '궁궐' 宮 자. 참고로 <수궁가>는 '토별가'라고도 한다. <수궁가>를 토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혜나 기지가 주제가 되겠지만 자라(별주부鼈主簿 - 주부라는 벼슬을 맡은 자라)의 입장에서 충(忠)이 주제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륜 중에서 군신유의(君臣有義)에 해당한다.
<눈대목>
고고천변
병이 든 용광이 토끼간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더러 토끼를 꾀어 용궁에 데려오게 하나, 토끼는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세상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수궁가 중에서 많이 불리는 대목은 토끼화상, 고고천변, 자라 토끼 만나는 대목, 토끼 삼재팔란, 토끼기변, 토끼 세상에 나오는 대목이 유명하다. 이 가운데서 토끼 화상과 고고천변은 가야금 병창으로, 또 고고천변은 단가로도 불리는 이름난 대목이다. 특히 중중모리 장단에 평우조로 부르는 고고천변은 자라가 육지로 나오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역대 명창들이 즐겨 부르는 대목이다.
5. 적벽가(赤壁歌)
'붉을' 赤에 절벽 壁 자이다. 적벽강은 중국 호북성 황강현 동쪽에 있는 강인데 아마 강 가의 절벽이 붉은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초와 오-한 나라간에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고 적벽가의 절정에 해당하고 눈대목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전에는 이 <적벽가>를 '화용도 타령'이라고도 불렀다. 참고로, <적벽가>는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짜인 판소리 바탕이다. <적벽가>는 유비, 관우, 장비의 의리를 말하고 있다고 해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이 그 주제가 된다고들 말한다.
<눈대목>
적벽강 싸움대목
판소리 적벽가에서는 삼고초려, 군사 설음타령, 자룡이 활쏘는 대목, 적벽강 싸움, 조조가 패주하는 대목인 새타령 등이 들을만 한데, 이중에서 긴박한 장면을 자진모리 장단에 얹어 해학적으로 그려낸 적벽강 싸움이 일품이다.
“일등명장 다 죽는다. 숨 멕히고, 기 멕히고, 쌀도 맞고,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일시에 다 죽는다. 앉어 죽고, 서서 죽고, 가다 죽고, 오다 죽고, 무단히 죽고, 남이 죽으니 따러 죽고, 죽어보면 어떤가 허고 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