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의 美>
우리음악의 가락은 곡선이요 서양음악의 선율은 직선이라는 말들을 한다. 달밤에 대나무 가지 스치는 소리를 연상케 하는 대금소리나 가야금과 거문고의 농현 끝으로 사라지는 여음을 들어보자. 음을 떨면서 흘러내리고 또는 치켜 올리면서 이어지는 모습을 선으로 그어본다면 그것은 곡선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부드러운 곡선은 소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천과 지붕의 모습에서 그리고 한복의 소매 끝과 여인네의 둥근 버선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표현방법에 있어서도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완곡한 표현을 즐겨 쓰는데 음악을 포함한 모든 문화현상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연환경과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부드러운 곡선에서 빚어지는 유장함과 더불어 소리를 꽉 채우지 않는 여백의 여유는 우리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멋이다. 화성을 배제한 단선율의 선적인 흐름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 우리음악은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미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부드러움과 여백의 미를 갖고 있는 우리소리는 관조와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곡들로는 청성곡, 영산회상, 천년만세, 수제천, 시조와 가곡 등이 있다.
한국음악은 정적인 모습과 동적인 모습을 함께 갖고 있는데 궁중음악이나 중인이상의 귀족계급에서 향유되었던 음악은 정적이면서도 장엄한 모습을, 민간에서 향유되었던 음악은 애원․처장 하면서도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음악의 아름다움은 여음의 처리에서 얻어지는 곡선의 부드러움, 여백과 느린 속도의 여유로움, 자연그대로의 음색과 자연에 합일하려는 음악정신의 화평함, 다양한 리듬구사와 흥겨운 노래의 신명성, 한과 신명으로 표출되는 비장하면서도 역동적인 아름다움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여음의 처리에서 얻어지는 곡선의 부드러움
2) 여백과 느린 속도의 여유로움
3) 자연그대로의 음색과 자연에 합일하려는 음악정신의 화평함
4) 다양한 리듬구사와 흥겨운 노래의 신명성
5) 한과 신명으로 표출되는 비장하면서도 역동적인 아름다움
<한국음악의 특징>
한국음악의 특징으로는 서양의 평균율과 다른 고유의 음정을 갖고 있으며 5음 음계를 주로 사용하는 점, 한음이 농현(弄絃: 요성, 퇴성, 추성)을 통해 미분음적 변화를 갖는 점, 단선율로 여백의 미를 갖는 점, 끊임없이 변화하는 선율로 단절없이 이어지는 점, 3박자를 많이 쓰며 다양한 리듬구사를 하는 점, 대체로 느린 음악이 많으며 느린 속도로 시작하여 점차 빨라지는 속도배열을 갖는 점, 강박으로 시작하여 약박으로 종지하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서양의 평균율과 다른 고유의 음정을 갖고 있는 점
2) 5음 음계를 주로 사용하는 점
3) 한음이 농현(弄絃 : 요성, 퇴성, 추성)을 통해 미분음적 변화를 갖는 점
4) 단선율로 여백의 미를 갖는 점
5) 끊임없이 변화하는 선율로 단절없이 이어지는 점
6) 3박자를 많이 쓰며 다양한 리듬구사를 하는 점
7) 대체로 느린 음악이 많으며 느린 속도로 시작하여 점차 빨라지는 속도배열을 갖는 점
8) 강박으로 시작하여 약박으로 종지하는 점
<풍류와 한, 그리고 놀이>
서양 전통의 미학은 작품의 미적 규범과 순음악적 가치를 중시하였다. 따라서 자율적 작품개념이 없었던 동아시아 전통의 미 사상은 그것과 다르다. 고대 중국에는 혜강과 같이 19세기 서양의 한슬리크(E. Hanslick)에 대응할 만한 음악사상가도 있었으나, 혜강의 사상도 자율적 작품개념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동아시아 전통에 뿌리를 둔 미론은 애초부터 작품개념의 위치에 대한 재설정을 필요로 한다. 서양 근대미학으로부터 차별화된 한국인의 미의식 가운데 하나로 '풍류(風流)'에 대한 재인식을 들 수 있다. '풍류', 즉 '바람의 흐름'은 자연친화, 초탈, 은자(隱者)의 유유자적한 '미적 생활방식'을 일컫는다. 민주식은 이것이 서양미학에서의 미(美), 예술, 그리고 감성적 인식 모두를 포괄한다고 보며, 김지하는 '풍류'의 초월적인 속성을 현 시대 디지털 매체에 접근하고 있는 '아우라'에까지 대응시킨다.
서양 근대의 미적 범주론은 예악사상과 비교할 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규범적 의미에서의 미론은 한국 전통예술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의식을 특정한 계층에 따라 구분한다는 것도 어디까지 객관적인 증명이 가능할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언급한 '풍류'는 원래 사대부계층의 생활방식에서 유래하였다는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반면 기층민중의 집단정서로는 '한(恨)'이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된다. 주지하는 대로 전자가 초탈이라면, 후자는 고뇌의 맺힘을 함유한다. 물론 '한'을 한민족에 국한된 정서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응하는 비애의 정서를 다른 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민요가락의 탄식요소가 서양의 집시 음악, 심지어 바흐의 음아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지 한민족은 비애에 상응하는 정서를 '한'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뿐인데, 이것은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민중의 고뇌로도 통용되어 왔다. 이러한 고뇌를 풍자적으로 승화시킨 예술형태가 바로 탈춤이다.
풍류와 한의 예술정서는 한국인의 놀이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놀이'는 20세기 이래 도입된 서양음악에서의 '연주'개념과 달리, 노동과 일상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영역이었다. 그러므로 이 영역은 기술문화와 함께 부상한 대중예술에서 오락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관념의 범주라기보다는 훨씬 더 삶의 실재와 체험이다. 한국인의 놀이문화는 도교와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하였고, 기독교까지 수용한 무속정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무속의식인 굿이 일상어에서 자주 놀이와 유사하게 통용되기도 하는 이유는, 굿이 볼거리의 장소를 의미하는 '판'과 함께 '놀이판', '굿판'이라는 공간성을 함유하기 때문이다. 놀이판과 굿판은 분절적인 시간보다는 처음과 끝이 불분명한 연행(演行)적인 사건성을 지닌다. 이러한 연행의 사건성⊙공간성과 즉흥성은 한국인의 생활방식이나 예술행위와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악(音樂)'의 의미를 한 번 짚어 보자. 서양의 'music'의 번역어인 '음악'은 'music'의 원래 의미인 그리스어의 무지케나, '예'와 '악'을 함께 보던 동아시아 전통의 의미와도 다르다. 즉 '음'은 규범에만 국한되지 않는 광의의 개념이며, '악'은 종합예술적인 의미가 아니라 즐겁다는 뜻이다. 직역하자면 '소리의 즐거움', 의역하면 '음향유희'가 되는 이 개념은 1950년 이후 서양 현대음악과 다르면서도 비교의 대상이 된다.